擧 (들) 거 一 (한) 일 反 (되돌릴) 반 三 (석) 삼 의미 하나를 들면 셋을 돌이켜 안다는 뜻.하나를 알려주면 셋을 아는 것처럼 매우 영리함을 비유하는 말 유래 《논어(論語)》 〈술이편(述而篇)〉에 나오는 말.공자가 말씀하기를 “분발하지 않으면 열어 가르쳐 주지 않고, 표현하고자 하나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면 일으켜 주지 않는다. 한 귀퉁이를 들어 가르쳐 주었는데도 나머지 세 귀퉁이를 미루어 알지 못하면 되풀이하지 않는다(不憤不啟, 不悱不發, 舉一隅不以三隅反, 則不復也)”이는 배우려는 사람이 깨우치기 위해 스스로 노력하지 않으
割 (벨) 할 股 (넓적다리) 고 療 (병고칠) 료 親 (친할(어버이)) 친 의미 허벅지의 살을 베어내어 부모를 치료한다는 뜻.지극한 효행(孝行)을 비유하는 말. 유래 당나라 때 진장기(陳藏器)가 쓴 《본초습유(本草拾遺)》,《송사(宋史)》 〈선거지편(選擧志篇)〉에 나오는 말.원래는 기근에 처한 주군 중이(重耳-후에 진문공으로 등극)의 목숨을 살리기 위하여 자신의 허벅지 살을 베어 먹인 개자추(介子推)의 ‘할고봉군(割股奉君)’ 일화에서 유래됨. 〔한식(寒食)의 탄생 배경〕당나라 명의 진장기(陳藏器)가 쓴 《본초습유(本草拾遺)》에 보면
蒲 (부들) 포 柳 (버들) 류 之 (갈) 지 姿 (맵시) 자 의미 일찍 시들어 떨어지는 갯버들의 자태.몸이 허약함을 스스로 이르거나 유약한 체질을 비유하는 말. 유래 《세설신어(世說新語)》 〈언어편(言語篇)〉에 나오는 말.동진(東晉) 사람 고열(顧悅)은 인품이 솔직하고 신의를 중히 여긴 관리로서 간문제(簡文帝)와 동갑이었다. 정무에 너무 과로한 탓에 건강을 해쳐 30대에 벌써 등이 굽고 백발이 성성했다. 어느 날 간문제가 자기와 동갑이면서도 머리가 하얗게 센 고열에게 ‘경은 어째서 그렇게 나보다 먼저 백발이 되었는가?’를 물었다.
討 (칠) 토 門 (문) 문 不 (아닐) 불 入 (들) 입 의미 자기 문 앞을 지나가면서도 들어가지 않는다는 뜻.공무에 바빠 사사로운 감정은 접어 두는 태도를 비유하는 말. 유래 《열자(列子)》 〈양주(楊朱)〉중국 요 순(堯 舜)임금 때 20년 동안 홍수가 계속되었다. 요임금은 곤(鯀)에게 명령해 9년 동안 홍수를 막고자 하였으나 실패하여 곤을 처형한다. 그 후 순임금은 곤의 아들 우(禹)를 등용하여 치수를 맡겼는데, 우는 아버지의 실패를 거울삼아 물을 ‘막는 방법이 아닌 흘려보내는 방법’으로 작은 냇물은 큰 강으로, 큰 강물은 바
瞻 (쳐다볼) 첨 前 (앞) 전 顧 (돌아볼) 고 後 (뒤) 후 의미 앞을 바라보고 뒤를 헤아린다는 뜻.어떤 일을 하기 전에 신중하게 앞뒤를 잰다는 말. 유래 《초사(楚辭)》 〈이소(離騷)〉〈이소(離騷)〉는 전국시대 초(楚)나라 삼려대부 굴원(屈原)이 간신배의 모함으로 초혜왕(楚懷王)과 그의 아들 경양왕(傾襄王)의 미움을 받아 멀리 동정호 부근에 유배되어 비참한 현실을 한탄하며 지은 장시이다.글원은 이 시에서 고대의 성군인 순(舜)임금을 통해 자신의 정치적 이상을 비추면서, 하(夏)나라 우(禹)왕과 상(商)나라 탕(湯)왕 같은 어진
前 (앞) 전 倨 (거만할) 거 後 (뒤) 후 恭 (공손할) 공 의미 전에는 거만했으나 나중에는 공손히 대한다는 뜻.상대방의 입지(지위)에 따라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는 모습. 유래 《사기(史記)》〈소진열전(蘇秦列傳)〉, 《전국책(戰國策)》〈진책(秦策)〉전국(戰國)시대 후기. 낙양(洛陽)사람인 소진(蘇秦)은 귀곡자라는 스승 밑에서 어렵게 공부했으나, 어느 나라에서도 등용되지 못하였다. 결국 빈털터리가 되어 집으로 돌아온 소진에게 형제는 물론 아내까지도 그를 노골적으로 비웃고 박대하였다. 이에 속이 상한 소진은 절치부심하며 병법 공부를
暗 (어두울) 암 箭 (화살) 전 傷 (상할) 상 人 (사람) 인 의미 몰래 화살을 쏘아 남을 상하게 함.남몰래 흉계를 꾸며 남을 해치는 일을 비유하는 말. 유래 《좌전(左傳)》의 〈은공(隱公) 11년〉, 《문견후록(聞見後錄)》춘추시대 정(鄭)나라의 군주 장공(莊公)은 국력이 급성장하자 BC712년 허(許)나라를 정벌할 계획을 세우고, 군대를 사열하면서 가장 용감한 장수에게 병거(兵車/수레)를 주기로 했다. 그때 백전노장 영고숙(穎考叔)과 젊은 장수 공손자도(公孫子都)가 병거를 두고 다투다가 영고숙이 차지하자 공손자도는 분을 삭이며
殺 (죽일) 살 身 (몸) 신 成 (이룰) 성 仁 (어질) 인 의미 인의(仁義)를 위하여 목숨을 바친다는 뜻.옳은 일, 의로운 일을 위해 목숨을 버리는 행위. 유래 논어(論語)》 〈위령공편(衛靈公篇)〉유가(儒家)의 중심사상은 인(仁)이며, 공자(孔子)가 가장 중요시했던 덕목이다. 공자는 사람들이 예(禮)를 행하지 않는 까닭을 자신의 욕구를 따르기 때문이라 여겼다. 따라서 예를 실천하려면 반드시 극기(克己), 즉 자신과 싸워서 이겨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제자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志士仁人(지사인인) - 높은 뜻을 지닌 선비와 어진
方 (모) 방 枘 (장부) 예 圓 (둥글) 원 鑿 (구멍) 조 의미 모난 장부와 둥근 구멍은 서로 맞지 않는다는 뜻.양쪽 의견이 일치하지 않아 서로 어울리지 않는 것을 이르는 말. 유래 《초사(楚辭)》 〈구변(九辯)〉중국 전국시대(戰國時代) 진(秦)나라는 장의(張儀)의 연횡(連橫)책을 채용하여 소진(蘇秦)의 합종(合從)책으로 대항하는 6국을 상대하였다. 진나라는 천하를 통일하기 위하여, 빈번하게 6국을 침범하였고 급기야 남쪽의 대국인 초(楚)나라에도 위협을 가하였다.이때 초나라 회왕(懷王)의 충직한 신하였던 굴원(屈原)은 제(齊)나
望 (바라볼) 망 梅 (매화) 매 止 (그칠) 지 渴 (목마를) 갈 의미 매실을 바라보며 갈증을 해소한다는 뜻. 상상을 통해 마음의 위안을 삼거나 타인의 욕구를 충족시켜 준다는 말. 유래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유비(劉備)가 조조(曺操)에게 몸을 의탁하고 있을 때, 하루는 조조가 유비를 정자로 불러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나는 후원의 매실이 익어가는 것을 보고 장수(張繡)를 정벌할 때의 기억이 나서 그대와 함께 담소하며 술이나 마시자고 불렀소. 그때는 행군 도중 물이 떨어져 병사들의 고통이 아주 심했는데, 내게 문득 한 가지 묘안
大 (큰) 대 姦 (간사할) 간 似 (같을) 사 忠 (충성) 충 의미 아주 간사한 사람은 충신처럼 보인다는 뜻.악한 본성을 숨기고 마치 가장 충실한 체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 유래 《송사(宋史)》〈여회전(呂誨傳)〉에 나오는 말.송나라 제5대 황제 영종(英宗)은 이민족들에 대한 조공으로 고갈된 국고를 부흥시키고, 국력을 키우기 위해 재정 개혁에 힘썼으나 즉위 4년 만에 별세한다. 이어 즉위한 신종(神宗)은 부왕이 이루지 못한 개혁을 계속 추진하기 위하여 개혁파 왕안석(王安石)을 재상으로 기용한다.왕안석은 신종의 신임 아래 수구세력의
藍 (쪽빛) 남 田 (밭)) 전 生 (날) 생 玉 (구슬) 옥 의미 남전에서 옥이 난다는 뜻. 명문 집안에서 인재가 나온다는 뜻으로 뛰어난 부자를 함께 칭송할 때 쓰는 말. 유래 《삼국지(三國志)》〈오서(吳書) 제갈각전(諸葛恪傳)〉촉(蜀)의 명재상 제갈량의 형인 제갈근(諸葛瑾)은 어질고 현명한 선비로 오(吳)나라의 관리가 되어 오왕 손권(孫權)의 신임을 얻고 있었다. 제갈근의 아들 제갈각(諸葛恪) 역시 어려서부터 재능이 남달라 명성이 자자했다. 제갈각이 여섯 살 때 아버지를 따라 조정 연회에 참석했는데, 손권이 이렇게 물어보았다.
擧 (들) 거 案 (밥상(책상)) 안 齊 (가지런할) 제 眉 (눈썹) 미 의미 밥상을 눈썹 높이까지 올려서 받친다는 뜻. 유래 後漢書(후한서)》 〈逸民傳(일민전).양홍편〉중국 후한 때 가난했지만 학문이 깊은 양홍(梁鴻)이라는 학자가 있었다. 그는 뜻한 바 있어 장가를 늦추고 있었는데, 같은 마을에 사는 못생긴 맹광(孟光)이란 처녀가 나이 서른이 넘었는데도 ‘양홍 같은 훌륭한 분이 아니면 절대로 시집을 가지 않겠다’며 버티고 있다는 소문이 들려왔다.양홍은 그 처녀의 뜻이 기특해서 결혼하게 되었는데, 결혼하는 날 맹광은 화장하고 예복을
汗 (땀) 한 牛 (소) 우 充 (채울) 충 棟 (마룻대) 동 의미 수레에 실으면 소가 땀을 흘릴 정도이고, 쌓아 올리면 들보에 닿을 정도라는 말. 책이 아주 많다는 비유적인 표현. 유래 당송팔대가 중 한 명인 문장가 유종원(柳宗元)이 동 시대 역사학자 육문통(陸文通) 선생의 묘표(墓表)에 쓴 글귀에서 유래.공자(孔子)가 지은 《춘추(春秋)》의 해석을 두고 수많은 학자들이 올바르지 못한 해석과 타 학파의 학자들에 대한 비난과 공격을 일삼는 그런 내용이 담긴 책들이 워낙 많아 이를 개탄하는 내용의 글이다.‘공자께서 춘추를 지은 지 천
閉 (닫을) 폐 門 (문) 문 造 (만들) 조 車 (수레) 거 의미 ‘문을 닫아걸고 수레를 만든다’라는 뜻. 실제를 고려하지 않거나 남의 경험을 전혀 받아들이지 않는 편협한 행동을 비유하는 말. 유래 《조당집(祖堂集)》 〈오관산서운사화상(五冠山瑞雲寺和尙)〉선종(禪宗)의 역사를 기록한 불교 서적 《조당집》 제20권 〈오관산서운사화상〉에 “먼저 진리를 밝힌 뒤에 인연에 순응하여 수행한다면 불조(佛祖)의 수행과 상응할 것이다. 이는 문을 닫아걸고 수레를 만들고, 밖에 나가 바퀴를 짜 맞추는 것과 같다(如似閉門造車, 出門合轍耳)”라는 구절